광종 인물 탐구-고려 광종의 노비안검법과 광종의 가계도, 부인, 후계까지
이 블로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음슴체'를 사용합니다. 다소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표현 방식이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광종, 고려 제4대 왕임.
이름만 보면 뭔가 빛날 광(光)에 종(宗)이 붙어서 반짝이는 이미지인데
실제 삶은 피로 물든 비극적 군주였음
그런데 웃긴 건 피의 군주로 불리지만
동시에 500년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닦은
성군 취급도 받는다는 거임.
이 양면성 덕분에 후대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림.
한때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이 광종이 '4 황자 왕소'로 재탄생한 적도 있음.
이 드라마에서는 얼굴에 상처 있는 왕자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군주 이미지 그대로 가져왔는데
실제 역사 속 광종은 드라마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처절했음.
오늘은 그 광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함.
광종 가계도
태조 왕건
┌───────────────┐
신명순성왕후 유씨 신정왕태후 황보씨
│ │
광종 (4대 왕) 대목왕후 황보씨 (광종 부인)
│
경종 (5대 왕)
혜종 (2대 왕)
│
경화궁부인 임씨 (광종 부인, 혜종 딸)
태조 왕건의 아들, 왕들의 형제
광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들이고, 정종의 친동생임.
근데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엄마 쪽.
광종 어머니가 충주의 호족 가문 출신인 신명순성왕후 유 씨였음.
충주는 후삼국 시대 때부터 무시 못 할 호족 세력권이었음.
광종은 친아버지는 태조, 와가는 충주 유 씨라는
든든한 백을 두고 태어난 그야말로 금수저였음.
부인 라인업도 빵빵했음.
이복누이인 대목왕후 황보 씨랑 결혼해서 황주 호족 세력을 잡았고,
조카인 경화군부인 임 씨랑 결혼해서 혜종 라인도 묶어둠.
한 마디로, 고려판 족내혼의 끝판왕이었음.
그렇다고 왕 되는 게 쉬웠던 것은 아님.
혜종, 정종이 줄줄이 요절하고
친형제들끼리도 반목하던 상황에
살아남아서 왕좌를 차지한 것만 봐도
광종의 정치 감각은 남다른 수준이었음.
고려판 황제국 프로젝트 - 칭제건원
광종은 즉위하자마자 연호부터 선포함.
그게 바로 '광덕(光德)'임.
한반도 역사에서 자기 연호를 쓰는 왕은 거의 없었는데
광종은 대놓고 황제국 선언을 해버린 거임.
이게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
개국공신들한테 휘둘리던 왕실을
강화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가 있었음.
황제 타이틀까지는 안 갔지만
내부적으로는 본인 스스로
황제급 대우를 받으려고 했던 게 사실임.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님
호족들이랑 공신들이 눈엣 가시였음.
태조 때부터 나라를 세운다고 끌어들였는데
이제는 왕보다 더 힘센 애들이 되어버렸음.
광종은 이 판을 갈아엎어야
왕 노릇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
노비안검법-피의 서막
광종 개혁의 시동을 건 게 바로 노비안검법임.
노비들 신분을 싹 조사해서
원래 양민이었던 사람들을 다시 풀어주는 법이었음.
호족들 입장에선 자기 재산 뺏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 난리 났음.
그런데 광종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음.
이게 성공하면서 왕권은 한 단계 올라갔고
공신들은 치를 떨기 시작했음.
이 와중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쌍기임.
중국 후주 출신 귀화인인데
이 양반이 과거제도를 들고 와서 광종한테 제안함.
광종은 즉각 받아들였고
과거제는 고려의 판을 통째로 바꾸는 핵폭탄급 제도가 되었음.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관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임.
호족들한테는 미칠 노릇이었겠지만
광종은 호족견제+신진 세력 키우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음.
관복제도 - 호족들의 마지막자존심까지
광종은 과거제 이후 바로
관복 제정까지 해버림.
신라, 후백제, 태봉 시절 복장을 들고 오는 것은 다 금지하고
자색, 단색, 비색, 녹색으로 관복으로 등급 정리함.
이제 누가 누군지 한눈에 보이게 만든 거임.
왕권 상징화 작업을 제대로 한 셈.
호족들의 자존심은 작살이 났고
광종의 왕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음.
피의 숙청-외롭고 두려운 왕좌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음.
960년부터 광종은 본격적인 공신 숙청에 돌입함.
공신들을 모반죄로 몰아 죽이고.
혜종, 정종의 아들들까지 싹 죽임.
나중엔 자기 부인 대목왕후
심지어 아들 경종까지 의심하기 시작함.
권력을 잡긴 잡았는데
아무도 못 믿는 외로운 왕이 된 거임
참소가 난무하고
노비가 주인 참소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시대가 열렸음.
광종이 꿈꾼 강력한 왕권의 결과물이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였던 거임.
마치며
광종은 참 복합적인 인물이었음.
개혁 군주이면서 동시에 피의 군주였음.
이 양면성 때문에 후대 평가도 엇갈림.
하지만 분명한 건
광종이 없었으면
고려 왕조가 500년을 버티기 어려웠을 거라는 거임
즉 강한 왕권이 없었으면
호족의 천국인 고려에서
왕은 그냥 허수아비가 됐을 거임.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4 황자 왕소가
바로 광종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앞에서 언급했는데
드라마 속 광종은 사랑에 아파하는 왕이었지만
실제 광종은 권력에 몸서리치던 왕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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