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어머니, 남편, 영화로 본 덕혜옹주 사진과 덕혜옹주 묘 이야기, 덕수궁 유치원에서 시작된 비극
이 블로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음슴체'를 사용합니다. 다소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표현 방식이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조선왕조 500년 끝자락,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태어난
마지막 옹주가 있음.
그 이름 덕혜옹주.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왕국도, 가족도, 정신도, 사랑도
다 잃어버린 여자였음.
비극의 아이콘 덕혜옹주의 사진들만 봐도
기구한 운명이 느껴질 정도임.
이야기는 1912년 덕수궁에서 시작함.
나라 잃은 황제
고종이 늦둥이 딸을 얻었는데
그 딸이 바로 덕혜였음.
고종은 그야말로 이 아이한테
마지막 희망을 걸었음.
조선의 왕조는 끝나가도
내 딸만큼은 지켜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덕혜옹주한테 너무나 가혹했음.
덕수궁에서 시작된 짧은 행복
덕혜옹주 출생지는 덕수궁임.
그때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라
덕수궁에서 사실상 유폐생활 중이었음.
근데 그런 와중에 태어난 늦둥이 딸 덕분에
고종의 말년은 잠시나마 웃음꽃이 피었음.
고종은 덕혜를 너무나 아껴서
덕수궁에 아예
덕혜옹주 유치원까지 설치해 줬음.
이 유치원이 바로 준명당임.
재미있는 게, 준명당 난간에 둥근 홈들이 있는데
이게 덕혜옹주가 다칠까 봐
일부러 설치한 흔적임.
그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딸이었음.
그런데 덕혜옹주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음.
1919년,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남.
8살짜리 덕혜한테는 너무나 가혹한 이별이었음.
아버지가 떠나자 덕혜는 순식간에 외톨이가 됐고
일본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됐음.
일본으로 끌려간 망국의 옹주
덕혜옹주 어머니는 귀인 양 씨였음.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후궁까지 오른 케이스라
고위층 출신 후궁들 사이에서는 입지가 약했음.
덕혜는 그런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고종 품에서 크다시피 했음.
하지만 고종이 죽자
덕혜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고
곧 일본으로 끌려가게 됨.
1925년 14살의 덕혜는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름.
조선 왕족의 정체성, 이름까지
싹 지우려는 일제의 계획이었음.
덕혜는 일본에서
오빠 영친왕 내외와 함께 지냈음.
근데 그때부터 이미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함.
늘 보온병을 들고 다녔는데
'누군가 독을 타서 죽일까 봐'
그랬다는 얘기가 전해짐.
고종이 독살당했다고 믿었던 덕혜였으니
그 불안감은 평생 따라다닌 트라우마였음.
정략결혼과 조현병, 무너져버린 인생
1931년
덕혜는 강제로 결혼하게 됨
신랑은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였음.
조선과 일본 왕실을 결혼으로 엮어서
조선의 독립 의지 자체를 없애려는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음.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일보는 덕혜옹주 남편 얼굴을
아예 삭제한 사진을 실었음.
조선 민심은 폭발했고,
덕혜를 일본에 빼앗긴 거에 대한 분노가 컸음.
근데 덕혜옹주 남편은
당시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었음.
도쿄대 영문학과 출신에
시인 기질도 있었고
외모도 준수했다고 함.
하지만 그런 남편도
덕혜를 끝까지 지켜주진 못했음.
덕혜는 결혼 후 점점 심해지는
조현병에 시달렸고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됐음.
결혼한 지 1년 만에 딸 정혜를 낳긴 했지만
덕혜의 불행은 멈추지 않았음.
딸 정혜는 1956년
유서를 남기고 실종됨.
7년 뒤 사망 처리됐지만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았음.
덕혜는 남편도, 딸도, 나라까지
모두 잃어버린 셈임.
37년 만에 돌아온 망국의 공주
덕혜는 일본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지내다가
1962년 박정희 정권 시절에
기적적으로 귀국하게 됨.
이 과정에서 기자 김을한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전해짐.
덕혜옹주 사진이 실린 기사들이
국민적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귀국이 성사됐음.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지만
덕혜는 이미
초점 없는 눈빛을 가진 중년 여인이 돼있었음.
그렇게 돌아온 덕혜가 머문 곳이 바로
창덕궁 낙선재였음.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간,
낙선재에서 덕혜는 생을 마감하게 됨.
덕혜는 말년에도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라고 말하곤 했다고 함.
왕족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마지막 애정이었겠지.
1989년
덕혜는 낙선재에서 조용히 눈을 감음.
그리고 9일 뒤,
함께 낙선재를 지키던 시누이
이방자여사도 세상을 떠남.
두 사람의 삶 자체가 망국 조선의
마지막 장면 같았음.
덕혜옹주 영화가 만들어지고
덕혜옹주 사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덕혜의 진짜 삶은 영화보다 더 처참했음.
나라 잃고, 가족 잃고, 정신 잃고, 사랑도 잃어버린 여자.
조선의 마지막 옹주라는 타이틀이
그녀에게는 끝없는 저주였을지도 모름.
현재 덕혜옹주 묘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데
남편과 딸 없이 혼자서 조용히 누워있음.
덕수궁에서 뛰놀던 유치원 시절 그 행복한 기억.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
그 모든 게 담긴 비극의 이름, 덕혜옹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임.
나라 잃은 공주의 슬픈 이야기,
덕혜옹주의 이름과 사진 한 장, 묘 한 평도 잊지 말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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