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독살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 죽음과 아버지 인조
이 블로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음슴체'를 사용하며, 다소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표현 방식이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는 왜 죽었을까?
1612년 1월 5일 한 아기가 태어남
이 아이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맏아들로, 후에 소현세자가 될 사람임.
평생 아버지 인조의 후계자로 길러졌지만
9년 동안 청나라에서 인질로 끌려가 고생하고
겨우 살아 돌아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의 죽음을 맞음.
그것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온몸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섬뜩한 모습으로 죽음.
왕세자인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버지 인조는 왜 이렇게까지 소현세자를 미워했던 걸까?
지금부터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세자로서의 탄탄대로 하지만 시작된 전쟁
소현세자는 1612년 광해군 시절에 태어나
1625년 14살의 나이로 왕세자가 됨.
어릴 때부터 성격이 침착하고 똑똑하며 리더십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덕분에 세자로서 큰 문제없이 자라남.
1627년 정묘호란이 터졌을 때
아버지 인조를 대신해 전주로 가서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맡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사건은 1635년 병자호란이었는데.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아버지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항복하게 됨.
그 결과 소현세자는 세자빈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 인질 생활을 하게 됨.
9년간의 인질 생활
1637년부터 무려 9년 동안 청나라에 머물먼서
소현세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됨.
청나라에서 직접 보고 배운 결과
소현세자는 조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됨.
"청나라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강하고 발전한 나라다."
"조선이 이들과 적대하기보다는 잘 지내는 게 살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서양 문물도 접하고
서양 선교사 아담 샬과 친해지면서 천문학, 기독교 같은 새로운 사상도 배움.
또한 조선인 포로들을 구출해 농장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줌.
그런데..
아버지 인조는 이런 아들의 변화를 전혀 반기지 않음.
인조 입장에서는
"조선의 왕이 될 놈이 청나라한테 물들어 온다니? 저거 왕 시키면 나라 망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청나라에서 돌아오고 2달 만에 죽은 소현세자
1645년 소현세자는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됨.
그런데 인조의 반응이 이상함.
"세자, 네가 많이 변했다며?"
"내가 널 어떻게 믿냐?"
반가워하기는커녕 엄청 싸늘한 태도를 보임.
게다가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가져온 지도, 천문 기구, 서적 등을 보여주며
"조선도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라고 주장했는데..
인조는 이를 보고 '저놈이 청나라의 앞잡이가 됐다' 며 경계하기 시작함.
그리고..
귀국한 지 2개월 만에 소현세자는 갑자기 죽어버림.
문제는 그의 시신이 온몸이 검게 변하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점.
사람들은 '독살당했다"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함.
하지만 누가 죽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음.
세자 가족에게 닥친 비극
소현세자가 죽자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세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효종)'을 왕세자로 삼음.
그뿐만이 아님
1646년, 세자빈 강 씨에게 "임금에게 저주를 했다"며 사약을 내림.
1647년,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냄.
그중 두 아들은 유배 중에 죽고, 막내아들만 가까스로 살아남음.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들까지 몰살한 인조.
이 정도면
'아무래도 소현세자 죽음에 뭔가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음.
소현세자의 죽음, 진실은?
설 1. 독살설
- 인조가 아들을 직접 죽였다는 설
- 인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조 씨(소용 조 씨)가 모함했다는 설
- 청나라에 우호적인 태도가 인조의 심기를 건드려 암살당했다는 주장
설 2. 병사설
- 청나라에서 9년 동안 고생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과로사했다는 주장
설 3. 정치적 제거설
- 명분이야 어쨌든 인조는 소현세자를 두려워했고 결국 제거한 것이라는 주장
지금도 소현세자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소현세자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혹은 조선의 왕이 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
소현세자의 비극은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왕자가, 결국 변화를 거부하는 구시대적 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건"
으로 기억되고 있음.
왕이 될 남자, 그러나 끝내 죽임을 당한 세자
세자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청나라에서 9년 동안 버텼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소현세자.
그러나 아버지의 불신과 정치 싸움 속에서
끝내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
조선이 가졌던 '잃어버린 가능성'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질문은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음.
댓글